고등학교 때 중간고사를 마치고 단체로 영화 관람을 "25시"로 했던 기억이 있다. 안소니 퀸의 얼굴만 추억 저편에서 아련하게 떠오른다.
교회는 사회를 구원할 수가 없지만 사회의 구성원인 개인은 구원한다. 코르카 신부의 말이다. 그럼 개인은 어디서 구원받는가? 물론 믿음으로 구원받는다.
모르츠는 13년의 험악한 인생을 살아냈다. 약소국인 루마니아 국민이었기에 절망의 시간 25시를 살았다.
하나님은 악을 멸하시지 않고 개인에게 고난을 믿음으로 살아낼 것을 요구한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바벨론 포로로 끌려간 동족들에게 그 땅에서 잘 견디고 살아내라고 하나님의 뜻을 전한다. 70년이 차면 해방고국으로의 돌아오게 하겠다는 하나님의 뜻을 전한다. 70년의 포로 생활은 이스라엘 민족의 고통의 몫이었다.
약소국가의 국민으로 태어나는 것은 이미 비극이다. 강대국들의 횡포에 노출되고 그들의 손에 약소국의 운명이 결정되기에.
25시는 인간 구원의 문제와 강대국의 횡포 그리고 선량한 사람들의 눈물이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
그럼에도 모리츠의 어머니와 스잔나가 코르카 신부를 구해주었고 모리츠의 석방도 코르카 신부의 아들 트라이안의 수고가 큰 몫을 담당한다. 운명 또한 하나님 손길 안에 있음을 안다.
오랫동안 제대로 읽지 않았던 책 제대로 읽어낸 것에 감사한다. 주님의 뜻을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