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 주간을 지나고 있습니다. 고난 주간이면 숙제처럼 톨스토이 부활을 읽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카투사와 네훌류도프의 슬프고 서글픈 애정사를 읽을 때마다 한숨 한 자락을 내뱉습니다. 어쩌자고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어 읽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읽어야만 하는 숙제가 되었을까요?
1899년 러시야의 사회상이 세밀하게 기록되어 있어 잘 섞인 양념처럼 배어 있습니다.
네흘류도프가 내 아들이라면 그리하여 카투사와 결혼하자고 나서면 등짝 후려치면서 정신 차리라고 말을 하겠지요.
땅을 사유화할 수 없다는 것에는 성경에서 땅은 하나님의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유재산이 인정되지 않는 세상은 발전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하나님 말씀을 이 땅에서 실천했던 톨스토이의 위대한 믿음의 노력에는 고개가 숙여집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 그리스도. 그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사람들을 섬기려고 왔다는 것이 기독교의 신비입니다. 이 땅의 사람은 자신의 욕망과 쾌락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타인을 섬기며 살라는 하나님의 메시지가 잘 녹여져 있습니다.